2019년, 3. 1운동은 100주년을 맞았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유관순 열사에게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했고요. 독립운동가 하면 떠오르는 유관순 열사에게 비로소 걸맞는 자리가 생긴 느낌입니다.
어렵고 혼란스런 시기지만 3. 1운동 101주년을 맞으며 다시 한 번 독립운동과 독립의 의미, 청산되지 않은 과거와 앞으로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을 떠올려 봅니다.
유관순 열사가 천안에서 공주로 유학했다는 사실을 공주에 와서야 알게됐습니다. 당시 공주는 충청도에서 교육과 경제의 중심 역할을 했다고 합니다. 충청지역에서 체포된 독립운동가들도 공주 교도소로 잡혀왔다고 해요. 공주에서 유관순 열사의 발자취를 발견한 건 우연이었습니다. 우연의 시작은 '공주 원도심 높은 곳들에 올라보자'였어요.
공주에 오래 살았지만 이런 곳이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지내는 분들과 여행이나 학교 진학으로 공주를 찾아온 분들에게 이 길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웅진 시대 백제 수도이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보유도시 공주에서 찾은 독립운동의 숨결, 함께 느껴볼까요?
출발지는 공주 원도심에 위치한 중동성당 앞입니다. 투박하나마 첨부한 지도에 함께 걸어볼 길을 파란색으로 표시했어요. 걷기 시작하자마자 상당한 오르막과 마주할 수 있으나 꿋꿋이 오르셔야 합니다. 그리고 언덕을 오를 때, 처음부터 올라가는 방향에서 왼쪽 인도를 이용하시기를 추천해요.
언덕을 오르다보면 이런 사진판을 발견하게 됩니다.
공주시 근대문화탐방길
3.1중앙공원/현 위치에서 230m
230미터라고 하니 굉장히 멀게 느껴졌어요. 그러나 언덕은 오르라고 있는 법. 일단은 마저 올라 봤습니다.
언덕을 다 올랐다면 당황하지 마세요. 왼쪽이 영명 중학교 정문이고 오른쪽으로 갈림길 쪽에 3. 1 중앙공원이 있으니까요.
1. 유관순 열사상
오른쪽을 보면 계단 위로 동상과 조각이 눈에 들어올 거예요.
유관순 열사상이었습니다.
여전히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는듯한 군중에 둘러싸여 한 손엔 책을, 다른 손엔 태극기를 들고 먼 곳을 바라보는 한 모습으로 서있는 유관순 열사가 거기 있었어요.
유관순 열사가 독립운동을 주도하다 일제에 체포된 건 나이 열여섯 살 때.
열여섯. 그가 어떤 마음으로 무슨 간절함으로 모든 걸 내던지면서 독립을 외쳤는지 상상하기도 어렵습니다. 대단하다 싶은 탄복과 부끄러움으로 어지러워지는 기분이었습니다.
#공주유관순 #유관순열사 #공주독립운동
2. 중앙공원(앵산공원)
현재 3. 1 중앙공원으로 명명된 이 공간의 본래 이름은 앵산공원입니다. 공주에서 가장 오래된 공원이라고 전해지는 이 곳은 '앵산'이라는 이름에서 벚꽃과 관련되어 이름지어졌을 거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해, 누군가가 피흘리며 죽어가는 순간에도 그 누군가는 이 곳에서 벚꽃놀이를 즐기지 않았을까 하는 슬픈 상상이 잠시 떠오르기도 했어요.
#공주3.1중앙공원 #공주앵산공원
3. 4.19학생혁명기념비
커다란 동상이나 자세한 설명은 없지만 묵묵히 자리를 지켜왔을 4.19학생혁명 기념비도 한쪽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마치 세월을 견디며 역사를 지탱하듯 단단히요.
#4.19학생혁명기념비
4. 공주역사전망대
여기부터는 영명 중학교 안입니다. 교문을 지나서 교정으로 걸어 들어오다 보면 오른 쪽에 커다란 나무를 볼 수 있습니다. 100년은 넘어 보이는 정말 커다란 나무인데요, 어쩌면 이 나무는 누구보다 더 생생하게 역사 속 그 날들을 기억하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공간에 붙여진 이름은 '공주 역사 전망대'. 이 곳에서는 공주가 어떻게 보이는지 올라가봤습니다.
역사전망대 위에는 공주에 위치한 주요 공간과 고지도가 함께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공주의 근대 모습과 현재가 교차하며 공존하는 공간이구나 하는 느낌이 왔어요.
#공주역사전망대 #영명중학교
5. 공주원도심
전망대에서는 공주 원도심이 한 눈에 들어왔습니다. 과연, 전망대라 이름 붙일만 하네요. 저 큰 건물은 오래 전에 무엇이었을까? 오래된 듯 보이는 저 집은 그 때도 같은 자리에 있던 게 아닐까? 과거와 현재의 대화는 역사 책 속에서만 하는 게 아니었어요.
#공주원도심 #공주전망대
6. 영명학당 유관순상
영명학당에도 유관순 상이 있었습니다.
공주로 유학한 유관순 열사는 영명여학교에서 배우고 이화학당으로 진학합니다. 서울에서 3.1운동을 벌였고, 4월 1일에는 천안 아우내 장터에서의 만세 운동을 주도하다 체포 됐다고요. 그 자리에서 부모님은 돌아가시고, 오빠 역시 공주 영명학교에서 만세운동을 주도하다 잡혔다고 합니다.
#영명학당 #3.1운동 #공주만세운동
7. 해원비
영명학교 한 켠에는 항일운동을 주도했던 이름을 새긴 비석과 흉상이 있습니다. 그리고, 해원비라는 비석도요.
해원비에는 이렇게 새겼습니다.
잊지도 않겠지만 용서도 못하리라
꽃다운 청춘 나이 일본군에 끌려가
님들은 지옥 같은 날 당하고 견디셨네
그러니 님들이여 그 원한 놓으시고
이제는 남은 세월 편안히 쉬시옵고
목숨이 다하시는 날 천국 위로 받으소서
2012년 7월 23일
공주시 고등학교 학생연합회
용서를 구하기 전까지는 잊지도 않고, 용서하지도 않겠다고 합니다. 그 마음을 잊지 않으며 편안히 쉬시길 기도해요.
8. 어린 유관순과 사에리시 동상
'1905년 샤프 선교사의 부인 사에리시는 현재 영명학교의 전신인 명선여학교를 설립하고 천안에 살던 열한 살 소녀 유관순을 데려와 2년 동안 공부하고 종교생활을 할 수 있도록 후원하였고, 1916년 이화학당으로 서울 유학길을 열어주었다'고 적고 있습니다.
1902년 생, 열한 살 유관순.
#유관순 #사에리시 #해원비
9. 1919년 4월 1일 공주만세운동을 기념하는 공간.
영명학교를 나오는 내리막에에 설치된 작품이 하나 있습니다. 태극기 위에 독립선언서를 새긴 작품입니다.
'오등은 자에 아 조선의 독립국임과 조선인의 자주민임을 선언하노라'하며 오래 전 외웠던 기미독립선언서와 이렇게 다시 마주하다니 감회가 새로웠습니다.
어쩌면 그날, 그들의 외침과 함성, 숨결이 마치 마지막 잎새처럼 오늘의 우리를 지켜주었던 건 아니었을까요.
봄이 움트는 이 계절에, 꽃보다 더 그리운 자유를 위해 소리쳤던 그들을 잊지 않겠다는 다짐과 그 자유를 지켜내겠다는 다짐을 나란히 되새겨 봅니다.
공주는 머물면 머물수록 알고 싶어지는 이야기가 숨어있는 도시임을 새삼 실감합니다. 유관순 열사와 공주가 이렇게 깊은 인연이 있을 줄 모르고 살았어요. 그리고 이렇게 가까이에 그날의 현장이, 사람들의 발자취와 흔적이 남아있다는 사실도 몰랐습니다. 우연히 발견한 길이지만 이제부터라도 더 찾아다니고 알아서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101주년 3. 1일을 보내고, 이렇게 씁니다.
#제민천 #제민천스토리 #마을스테이 #마을호텔 #마을여행 #공주가볼만한곳 #도보투어
[출처] [역사를 걷다] 1919년 유관순 로드|작성자 제민천스토리
2019년, 3. 1운동은 100주년을 맞았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유관순 열사에게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했고요. 독립운동가 하면 떠오르는 유관순 열사에게 비로소 걸맞는 자리가 생긴 느낌입니다.
어렵고 혼란스런 시기지만 3. 1운동 101주년을 맞으며 다시 한 번 독립운동과 독립의 의미, 청산되지 않은 과거와 앞으로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을 떠올려 봅니다.
유관순 열사가 천안에서 공주로 유학했다는 사실을 공주에 와서야 알게됐습니다. 당시 공주는 충청도에서 교육과 경제의 중심 역할을 했다고 합니다. 충청지역에서 체포된 독립운동가들도 공주 교도소로 잡혀왔다고 해요. 공주에서 유관순 열사의 발자취를 발견한 건 우연이었습니다. 우연의 시작은 '공주 원도심 높은 곳들에 올라보자'였어요.
공주에 오래 살았지만 이런 곳이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지내는 분들과 여행이나 학교 진학으로 공주를 찾아온 분들에게 이 길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웅진 시대 백제 수도이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보유도시 공주에서 찾은 독립운동의 숨결, 함께 느껴볼까요?
출발지는 공주 원도심에 위치한 중동성당 앞입니다. 투박하나마 첨부한 지도에 함께 걸어볼 길을 파란색으로 표시했어요. 걷기 시작하자마자 상당한 오르막과 마주할 수 있으나 꿋꿋이 오르셔야 합니다. 그리고 언덕을 오를 때, 처음부터 올라가는 방향에서 왼쪽 인도를 이용하시기를 추천해요.
언덕을 오르다보면 이런 사진판을 발견하게 됩니다.
공주시 근대문화탐방길
3.1중앙공원/현 위치에서 230m
230미터라고 하니 굉장히 멀게 느껴졌어요. 그러나 언덕은 오르라고 있는 법. 일단은 마저 올라 봤습니다.
언덕을 다 올랐다면 당황하지 마세요. 왼쪽이 영명 중학교 정문이고 오른쪽으로 갈림길 쪽에 3. 1 중앙공원이 있으니까요.
1. 유관순 열사상
오른쪽을 보면 계단 위로 동상과 조각이 눈에 들어올 거예요.
유관순 열사상이었습니다.
여전히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는듯한 군중에 둘러싸여 한 손엔 책을, 다른 손엔 태극기를 들고 먼 곳을 바라보는 한 모습으로 서있는 유관순 열사가 거기 있었어요.
유관순 열사가 독립운동을 주도하다 일제에 체포된 건 나이 열여섯 살 때.
열여섯. 그가 어떤 마음으로 무슨 간절함으로 모든 걸 내던지면서 독립을 외쳤는지 상상하기도 어렵습니다. 대단하다 싶은 탄복과 부끄러움으로 어지러워지는 기분이었습니다.
#공주유관순 #유관순열사 #공주독립운동
2. 중앙공원(앵산공원)
현재 3. 1 중앙공원으로 명명된 이 공간의 본래 이름은 앵산공원입니다. 공주에서 가장 오래된 공원이라고 전해지는 이 곳은 '앵산'이라는 이름에서 벚꽃과 관련되어 이름지어졌을 거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해, 누군가가 피흘리며 죽어가는 순간에도 그 누군가는 이 곳에서 벚꽃놀이를 즐기지 않았을까 하는 슬픈 상상이 잠시 떠오르기도 했어요.
#공주3.1중앙공원 #공주앵산공원
3. 4.19학생혁명기념비
커다란 동상이나 자세한 설명은 없지만 묵묵히 자리를 지켜왔을 4.19학생혁명 기념비도 한쪽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마치 세월을 견디며 역사를 지탱하듯 단단히요.
#4.19학생혁명기념비
4. 공주역사전망대
여기부터는 영명 중학교 안입니다. 교문을 지나서 교정으로 걸어 들어오다 보면 오른 쪽에 커다란 나무를 볼 수 있습니다. 100년은 넘어 보이는 정말 커다란 나무인데요, 어쩌면 이 나무는 누구보다 더 생생하게 역사 속 그 날들을 기억하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공간에 붙여진 이름은 '공주 역사 전망대'. 이 곳에서는 공주가 어떻게 보이는지 올라가봤습니다.
역사전망대 위에는 공주에 위치한 주요 공간과 고지도가 함께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공주의 근대 모습과 현재가 교차하며 공존하는 공간이구나 하는 느낌이 왔어요.
#공주역사전망대 #영명중학교
5. 공주원도심
전망대에서는 공주 원도심이 한 눈에 들어왔습니다. 과연, 전망대라 이름 붙일만 하네요. 저 큰 건물은 오래 전에 무엇이었을까? 오래된 듯 보이는 저 집은 그 때도 같은 자리에 있던 게 아닐까? 과거와 현재의 대화는 역사 책 속에서만 하는 게 아니었어요.
#공주원도심 #공주전망대
6. 영명학당 유관순상
영명학당에도 유관순 상이 있었습니다.
공주로 유학한 유관순 열사는 영명여학교에서 배우고 이화학당으로 진학합니다. 서울에서 3.1운동을 벌였고, 4월 1일에는 천안 아우내 장터에서의 만세 운동을 주도하다 체포 됐다고요. 그 자리에서 부모님은 돌아가시고, 오빠 역시 공주 영명학교에서 만세운동을 주도하다 잡혔다고 합니다.
#영명학당 #3.1운동 #공주만세운동
7. 해원비
영명학교 한 켠에는 항일운동을 주도했던 이름을 새긴 비석과 흉상이 있습니다. 그리고, 해원비라는 비석도요.
해원비에는 이렇게 새겼습니다.
잊지도 않겠지만 용서도 못하리라
꽃다운 청춘 나이 일본군에 끌려가
님들은 지옥 같은 날 당하고 견디셨네
그러니 님들이여 그 원한 놓으시고
이제는 남은 세월 편안히 쉬시옵고
목숨이 다하시는 날 천국 위로 받으소서
2012년 7월 23일
공주시 고등학교 학생연합회
용서를 구하기 전까지는 잊지도 않고, 용서하지도 않겠다고 합니다. 그 마음을 잊지 않으며 편안히 쉬시길 기도해요.
8. 어린 유관순과 사에리시 동상
'1905년 샤프 선교사의 부인 사에리시는 현재 영명학교의 전신인 명선여학교를 설립하고 천안에 살던 열한 살 소녀 유관순을 데려와 2년 동안 공부하고 종교생활을 할 수 있도록 후원하였고, 1916년 이화학당으로 서울 유학길을 열어주었다'고 적고 있습니다.
1902년 생, 열한 살 유관순.
#유관순 #사에리시 #해원비
9. 1919년 4월 1일 공주만세운동을 기념하는 공간.
영명학교를 나오는 내리막에에 설치된 작품이 하나 있습니다. 태극기 위에 독립선언서를 새긴 작품입니다.
'오등은 자에 아 조선의 독립국임과 조선인의 자주민임을 선언하노라'하며 오래 전 외웠던 기미독립선언서와 이렇게 다시 마주하다니 감회가 새로웠습니다.
어쩌면 그날, 그들의 외침과 함성, 숨결이 마치 마지막 잎새처럼 오늘의 우리를 지켜주었던 건 아니었을까요.
봄이 움트는 이 계절에, 꽃보다 더 그리운 자유를 위해 소리쳤던 그들을 잊지 않겠다는 다짐과 그 자유를 지켜내겠다는 다짐을 나란히 되새겨 봅니다.
공주는 머물면 머물수록 알고 싶어지는 이야기가 숨어있는 도시임을 새삼 실감합니다. 유관순 열사와 공주가 이렇게 깊은 인연이 있을 줄 모르고 살았어요. 그리고 이렇게 가까이에 그날의 현장이, 사람들의 발자취와 흔적이 남아있다는 사실도 몰랐습니다. 우연히 발견한 길이지만 이제부터라도 더 찾아다니고 알아서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101주년 3. 1일을 보내고, 이렇게 씁니다.
#제민천 #제민천스토리 #마을스테이 #마을호텔 #마을여행 #공주가볼만한곳 #도보투어
[출처] [역사를 걷다] 1919년 유관순 로드|작성자 제민천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