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스테이, 제민천]시간이 머무는 곳, 우리들의 공주

2020-03-14

절대로 실패하지 않는게 뭔지 아니

..바로 무계획 이란다


 2월의 첫 날, 나는 절친의 지방 결혼식과 함께 공주 여행을 다녀왔다. 영화 기생충의 한 대사처럼 예정에 없었던 여행은 무계획. 6살, 10개월. 사실 어린 아이 둘과 함께하는 여행은 ‘계획’ 이라는 것이 무의미 하다고 할까? 아이들의 컨디션과 기분에 따라 모든 것들이 즉흥적으로 결정되기 때문에 그냥 잘 쉬다 오면 좋겠다는 마음 뿐 이였다. 


계획하지 않았던 우리 가족의 공주 여행은 ‘완벽한 여행’이 되었다. 공주를 떠나며, 딸 아이와 나는 꽃피는 봄이 오면 다시 공주에 오자고 꼬옥 약속했다. 시간이 머물렀던 그 곳, 공주는 그렇게 우리 가족에게 다시 가고 싶은 그리운 곳이 되었다.



1. 살고 싶은 옛날 집, 한옥 스테이


"엄마, 여기가 옛날 집이야? 엄청 좋다!" 

아이가 숙소에 도착하자 설렘을 감추지 못하고 외쳤다. 똑같이 생긴 네모난 아파트에만 살다가 아담한 마당, 나무 빗살에 창호지를 바른 문을 가진 집을 보니 신기하고 좋았나 보다. 

여행 사흘 전, 유일하게 정했던 것이 바로 숙소 ‘봉황재’ 다. 1960년대 지어진 한옥인 봉황재는 푸근하고 따뜻하게 우리를 맞아주었다. 시원하게 뻗은 처마 지붕, 살며시 햇볕이 드는 대청마루, “끼익” 소리를 내며 열리는 오래된 문. 이것이 한옥의 매력이 아니겠는가. 

우리가 묵을 ‘큰방’에 들어가니 센스있는 사장님께서 미리 아랫목 온도를 올려 놓아 뜨끈한 바닥의 기운이 온몸을 타고 전해졌다. 바닥에 손을 대고 앉으니 왠걸. 손톱 밑이 노래지도록 귤을 까먹으며 만화책을 읽으면 딱 좋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역시 한옥의 매력은 겨울에 따끈한 온돌 바닥이 아닐까 싶다.


 

햇볕이 잘드는 대청마루와 작은 마당. 아침부터 따뜻한 햇살이 마루까지 들어온다.



소박하지만 잘 정돈된 지난 가을의 마당 풍경. 날씨가 따듯하면 마당에서 아침을 먹을수 있다고 하니 꽃피는 봄이 오면 꼭 다시 들러야겠다. 


우리가 묵은 ‘큰방’은 가족을 위한 방이라고 했는데, 그 이유는 바로 위에 있었다. 방 한켠에 큰 다락방이 함께 있어 아이는 비밀공간에 온 듯 마냥 신이 났었다. 다락방 문을 열고 올라가면 밖을 볼 수 있는 작은 창과 책장에 여러 동화책이 있어 아이는 키즈카페 못지않게 위를 오르락 내리락 하고 놀며, 책도 읽을 수 있었다. 


큰아이 놀이터가 되었던 비밀 아지트 같은 다락방. 오르락 내리락 신나게 놀고 동화책도 볼 수 있었던 아이의 최애공간. 바닥에도 난방을 할 수 있어 아이가 놀다가 잠을 자기에도 충분한 공간이다


한옥의 밤은 더욱 운치있다. 대청마루에 앉아 뜨끈한 코타츠에 발을 넣고 시원한 맥주를 마시는 행복은 경험하지 않은 사람은 모르는 것! 


공주에 오기 전, 한 지인이 한옥에서 숙박을 한다고 하니 춥지 않겠냐는 걱정을 했다. 하지만 어릴 적부터 주택에 살았던 나는 적절한 외풍이 있는 집에 익숙 해서 그런지 한옥이 주는 불완전함이 좋았다. 따듯한 바닥에 등을 대고 누워야 코끝을 스치는 외풍을 느낄 수 있는 한옥. 역시 겨울에 와야 한옥의 매력을 온몸 으로 느낄 수 있는 것 같다. 다행히 아이들도 따뜻한 바닥 때문인지 춥다고 하지 않고 꿀잠을 잤다. 우리 가족은 모두 한옥 체질인가 보다. 


공주여행에서 돌아온 날 저녁, 큰 아이는 옛날 집에서 살고 싶다며 흑흑 울면서 잠이 들었다. 날씨가 따뜻해지면 이곳 봉황재에 와서 자고 가자고 약속했다. 아이에게 잊지 못할 좋은 추억을 만들어 준 것 같다.

 

2. 쉬엄쉬엄 제민천 산책


봉황재의 따뜻한 온돌 바닥 덕분에(?) 우리 가족은 저녁때쯤 숙소에서 나왔다. 땅거미가 진 어둑한 제민천을 따라서 호롱불이 길게 비추고 있었다. 우리는 숙소 사장님께서 주신 ‘공주 원도심 걷기 여행지도’를 들고 산책을 해보기로 했다. 

지도에서는 거리가 있어 보였지만 걷다 보니 쉬엄쉬엄 가면 모두 도보로 닿을 수 있는 거리였다. 지도에 있는 상호를 찾으면서 걸어가는데, 대부분의 상점들이 현란한 하지 않은 소박한 간판을 달고 있었다. 주거와 함께 있는 곳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이곳 분위기와 어우러질 수 있게 한 것 같다. 


제민천을 따라 곳곳에 숨은 맛집들이 있었는데, 늦게 숙소에서 나온 탓인지 몇 군데는 문을 닫은 상황. 게으름을 탓하며 우리는 지도에서 찾은 또다른 맛집! 추위를 녹여줄 따뜻한 칼국수와 꿀맛 같은 보쌈을 든든하게 먹을 수 있었다. 함께 곁들인 달달한 공주 알밤막걸리도 엄지척! 

토요일 저녁, 시끌벅적 하지 않은 제민천은 조용한 공주가 주는 여유로움을 제대로 느낄 수 있게 해주는 것 같다. 제법 쌀쌀한 날씨와 밤인 탓에 길게 제민천을 산책하지 못해 아쉬움이 남았다. 다음기회에 공주에 올 때는 꽃향기와 물냄새 맡으며 살랑살랑 제민천을 산책해 봐야겠다. 

 

3. 소소한 상점들이 주는 즐거움


공주 원도심의 매력은 골목골목 작은 상점이다. 아이는 한 손에 지도를 들고 보물찾기를 하듯이 상점을 찾았다. 레트로 감성 가득한 골목길에는 옹기종기 구옥이 있고 햇볕 비추는 전봇대를 지나다보면 귀여운 길고양이도 만날 수  있었다. 이곳에서 유난히 고양이를 많이 봤는데, 공주에 길고양이가 많은 곳에 고양이 공원이란 곳이 있었다. 


고양이 공원을 가는길 바로 앞, 눈에 띄는 상점이 있었다. 오래된 오르간에 1917 여러 단행본을 진열해 놓은 작은 책방. 동그란 교자상이 간판인 이곳의 이름은 가가책방. 사장님의 소장본과 판매하는 책이 공존하는 책방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공간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따뜻한 난로 옆에 앉아 책을 읽고 싶었지만 밖에서 놀자는 아이 때문에, 독서는 뒤로하고 얼른 마음에 드는 책 두 권을 골라 샀다. 책을 사니 사장님은 직접 드로잉한 엽서를 선물로 껴주셨는데, 공주의 곳곳을 그린 엽서는 공주 추억을 소환하기에 충분할 정도로 특별했다. 


누구나 책을 읽을  있는 열린공간 가가책방책방을 빼곡히 둘러싼 책장에는 만화책부터 문학소설 까지 다양한 장르의 책이 있다빈백소파에 기대 앉아 시간가는  모르고 책을 읽다 오고 싶은 아줌마의 마음을 알까.


책 두 권을 껴들고, 우리는 숙소 사장님이 추천해주신 커피집을 찾았다. 이번 여행의 종착지인 반죽동 247. ‘여기가 커피 맛집 이로구나’ 라는 생각이 드는 곳 이다.  

커피를 시키기 전, 우리가 고른 원두의 맛과 풍미에 대해 설명해 주시는 사장님 을 보니 뭔가 있겠다 싶었다. 워낙 커피를 좋아해서 적어도 맛있는 커피는 구별 할 줄을 아는 나는 이 곳 커피 맛에 눈이 휘둥그래졌다. ‘아! 오랜만에 정말 맛있는 커피를 마셨다.’ 


커피를 감별하는 ‘큐그레이더’ 자격증을 소지한 사장님께서 직접 로스팅한 원두로 내린 커피는 반죽동 247만의 색이 확실했다. 사장님의 커피에 대한 사랑과 자부심이 그대로 담겨 있는 것 같다. 나와 신랑은 진한 드립커피와 라떼를 마시며 정말 맛있는 커피를 마실 수 있는 여유와 호사에 다시 한번 감사했다.


커피맛집 반죽동 247. 큐그레이더 사장님이 직접 로스팅한 신선한 커피로 내린 커피맛이 일품. 오랜만에 정말 맛있는 커피를 마실 수 있어 행복했던 곳. 


봉황재 한옥스테이,   제민천 산책,   소소한 상점 탐방.   이곳 보다 공주에 더 많은 관광 명소가 있을 테지만 이 세 곳은 계획하지 않았던 우리 가족의 여행을 더 완벽하게 했던 공주의 관광코스 였다.   아직 공주의 꽃피는 봄, 푸르른 여름,   멋진 가을 풍경을 보지 못했으니 계절이 바뀔 때 마다 이곳 공주에 와야겠다 . 아이들 손잡고 신나게 뛰어놀 수 있는 계절을 즐겨봐야 하지 않겠는가.   그때까지 우리들의 공주 또 보자,   안녕!  




계획하지 않아 완벽했던, 아이와 함께한 가족여행

-The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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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시간이 머무는 곳, 우리들의 공주|작성자 제민천스토리

About Town Stay
지역의 고유한 정체성을 지닌 건물에서 하루를 지내고, 이름난 맛집보다는 주민들이 즐겨 찾는 동네 식당과 가게를 찾는 여행이다. 지역 예술가, 작가, 교류할 수 있는 공방과 갤러리, 동네책방에서 지역 주민과 교류하고 커뮤니티의 일원이 된다. 친구가 된다. 마을을 관광지로서 소비하기보다는 주민 생활공간에 머물면서 지역과 교류하고 마을의 일상을 여행하는 총체적인 경험을 마을스테이라 부른다.

Location

마을스테이 컨시어지 / 공주시 감영길 3
봉황재 한옥 / 공주시 큰샘3길 8
업스테어스 코워킹스페이스 / 공주시 감영길 9, 2층


Reservation

Tel 041-960-55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