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직하다

마을스테이에 머무르며, 거닐며, 경험하며
기억과 추억을 간직합니다.

#1 전근대

대통사지 공원

이 공원은 백제 성왕 때 만들어진 ‘대통사(大通寺)’라는 이름의 절터로 추정된다. 이름과 위치를 확인할 수 있는 ‘가장 오래된 백제 절’이다.

일제강점기 때 이 부근에서 ‘대통(大通)’이라는 글이 새겨진 기와, 조각이 발견하면서 당간지주 주변을 발굴 조사했지만 아직까진 대통사와 관련된 유구나 유물이 발견되진 않은 상황이다.

역사적으로 중요한 것도 있지만 이 공원이 더 의미가 있는 이유는 일상 속 주민들의 편안한 쉼터가 되어주기 때문일 것이다. 공원은 언제나 모두에게 열려 있다. 날이 좋을 땐 정자에 어르신들이 앉아 계시고, 잔디밭에 돗자리를 깔고 피크닉을 하거나 아침 요가를 하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플리마켓이나 공연 등 다양한 행사가 벌어지기도 한다.

주민 이야기

공원에 우두커니 자리 잡은 돌탑은 사실 가짜 탑이다. ‘뭔가 익숙한데’ 싶다면 맞다, 부여의 정림사지 오층 석탑의 모습을 재현한 것이다. 부처님 오시는 날이면 이 탑이 행사장으로 이동하곤 하는데 이 때문에 ‘가짜 탑’, ‘행사 뛰는 탑’이라는 별명이 붙여지기도 했다고.


당간지주

공원 한복판에 기다란 돌기둥 두 개가 서 있는 걸 발견할 수 있다. ‘당간지주’라 불리는 이 돌기둥은 사찰에서 기도나 법회 등 의식이 있을 때 당을 달아 두는 기둥이다. 백제가 아닌 통일신라 때 만들어졌다고 추정되고 있는데 이를 통해 대통사가 통일신라 때도 남아있었다는 걸 알 수 있다.

주민 이야기

이 공원은 유물 발굴 전엔 일반 주택가였다. 한 공주 주민분이 말씀하시길 “공원이 조성되기 전에 여긴 원래 주택가였어요. 어릴 적 친구가 이쪽에 살았는데 친구 집 앞에 돌이 있었거든요. 그땐 그게 당간지주인 지 몰랐죠.”


충정감영 터

공주 원도심 가장 중심에 자리 잡은 학교 정문의 기세가 심상치 않다.

그도 그럴 것이 현재 공주 사대부고(공주대학교 사범대학 부설 고등학교)가 자리하고 있는 곳은 조선의 충청감영 터가 있는 곳이었다. 공주 사대부고 정문은 충청감영의 출입문이었던 포정사 문루를 재현한 것이다.

충청감영은 조선시대 충청 관찰사가 업무를 보던 곳으로, 1707년 서쪽 봉황산 아래로 자리 잡아 1932년 충남도청이 대전으로 이전할 때까지 2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같은 자리를 지켰다. 이를 통해 공주가 조선 후기 이후 충청도와 충남 지역의 정치, 행정, 경제, 군사, 문화의 중심 역할을 해왔다는 걸 짐작할 수 있다.

주민 이야기

공주 사대부고 안에 봉황을 찾아라!

사대부고가 위치한 이 동네 일대를 ‘봉황동’이라고 한다. 봉황산 아래에는 봉황이 즐겨먹는 대나무 반죽(班竹)이 많다고 하여 반죽동으로 불리었다고.

#2 근현대

공주 옛 읍 사무소

이곳은 일제강점기 서양식 건물로, 1923년 충남금융조합회연합회 회관으로 개관했다. 1932년 충남도청이 대전으로 이전하기 전까지 공주는 충남의 행정 중심지였음을 보여준다. 공주는 조선시대 충청감영의 소재지였을 뿐만 아니라 호서와 호남을 잇는 교통과 상업의 중심지였다. 하지만 대전이 철도 부설지로 결정되면서(1904년 경부선, 1914년 호남선 개통)이 대전을 중심으로 건설되면서 충남도청은 1932년 대전으로 옮겨졌다. 이는 공주의 활기를 잃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공주 읍 사무소, 공주시청, 디자인 카페 등 이 공간을 거쳐간 다양한 이름이 공주의 역사를 대변하고 있음을 느끼게 한다. 현재는 ‘공주 옛 읍사무소’라는 이름으로 돌아와 공주 지역의 역사 혹은 인물, 생활사가 전시되고 있다.


충남 공주시 우체국길 8

매일 09:00 - 18:00 / 매주 월요일 휴무

그 외 이야기

2층은 평소에 전시관이지만 포럼, 교육 등 행사 장소로 활용되기도 한다.

공주 옛 읍사무소 앞에 일제강점기 때 만들어진 공주 유일의 나무 전봇대와 옛 양조장 건물이 남아있다.


중동성당

1898년에 설립된 공주 지역 최초의 천주교 성당이다. 1898년 프랑스 선교사가 초대 신부로 부임하여 중동에 부지를 마련했고, 1937년 현재 성당 건물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중동성당은 전통 목조 건축에서 현대건축으로 넘어가는 시기의 고딕양식의 건축물로 평가된다.


충남 공주시 성당길 6

041-856-1033

미사시간만 건물 내부로 들어갈 수 있음

주민 이야기

밝을 때도 좋지만 해가 뉘엿뉘엿할 무렵에 가길 추천한다. 공주 원도심을 향해 해가 져물어가는 모습을 한 눈에 내려다볼 수 있다.


기독교 박물관

공주 제일교회는 1902년 시작된 수원 이남 최초의 감리교회이다.

한국 개신교 초기 선교사들의 선교활동 뿐만 아니라 3.1만세운동, 민족계몽운동, 교육과 문화의 중심 역할을 했다. 현재는 기독교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공주 지역 기독교 역사, 예배당의 건축사, 기독교인들에 대한 이야기와 함께 각종 역사적 사료가 전시되고 있다.


충남 공주시 제민1길 18

평일 10:00 - 17:00, 토요일 10:00 - 15:00

/ 매주 월, 일요일 휴무

그 외 이야기

한국 시문학의 대표 작가 ‘박목월’이 이곳에서 결혼식으로 올렸다.

내부로 들어서면 입구 쪽 창문에 ‘우리나라 최초의 스테인드글라스 개척자’라고 불리는 이남규 선생님의 스테인드글라스를 발견할 수 있다.


주민 이야기

기독교 박물관에서 제민천 쪽을 바라보면 붉은 색 건물이 보이는데 ‘중학동 구 선교사 가옥’이다. 1900년대 초에 지어진 공주 최초의 서양식 주거 건물로, 미국 선교사 사택으로 처음 사용되었다. 현재는 내부로 들어갈 순 없고, 밖에서만 구경이 가능하다.

한 마을 주민이 말씀하길 “어릴 적 그 집에 가까이 가지 말라고 말을 많이 들었다. 서양 귀신이 산다고. 외국인이 생소했을 시기였다.“


영명 중, 고등학교

미국 선교사 샤프(Robert A. Sharp)와 그의 부인 앨리스 샤프(Alice Sharp), 한국명으론 사애리시(史愛理施) 부부는 교육 활동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들은 교육의 필요성을 느끼고, 충청권 최초의 근대 학교 ‘명설 학교’, 충청권 최초의 여성 ‘명선 여학당’을 설립했다. 이는 오늘날 영명 중, 고등학교의 전신이 되었다.

영명 학교 학생들이 독립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는데 근대 교육이 큰 영향을 미쳤음을 알 수 있다. 영명 중고등학교 부지로 들어서면 적어도 몇 백 년 되어 보이는 느티나무가 있는데 이 곳을 ‘공주 역사 전망대’라고 불린다. 이 곳에 서면 공주 원도심을 한 눈에 내려다볼 수 있다.

그 외 이야기

독립운동 유관순 열사도 영명 학교 출신으로, 사애리시 선교사가 그녀를 양녀로 삼아 교육하고, 후에 서울 이화학당으로 유학 가게 돕는다.

#3 그리고 지금

나태주 시인 골목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시와 친하지 않더라도 한 번쯤 들어봤을 시 <풀꽃> 시인 나태주 선생님의 따스한 시선이 담겨있는 시와 담벼락에 작은 그림과 함께 그려져 있다.

나태주 선생님은 시인이기 이전엔 초등학교 교사셨다. 나태주 선생님의 고향은 충청남도 서천이지만 공주 사범학교(현재 공주교육대학교)를 다니면서 공주의 매력에 푹 빠지셔 지금까지 공주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계신다.

그 외 이야기

나태주 골목길에 나태주 선생님이 교사에서 시인의 길로 가게 된 작품 '대숲 아래서'가 그려져 있다. (‘대숲 아래서’: 교사 재직 중이던 1971년에 서울신문 신춘문예에서 등단한 작품)


주민 이야기

나태주 선생님 제민천 마을 NPC설

제민천 마을에서는 나태주 선생님을 어렵지 않게 뵐 수 있다. 모자로도 인자한 인상이 가려지지 않는 누군가 자전거를 타고 지나간다면 나태주 선생님이다.


공주 풀꽃문학관

일제 강점기 때 헌병대장 관사로 사용되었던 적산가옥으로, 현재는 공주 문인들의 창작활동 공간인 풀꽃문학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시인 나태주 선생님은 풀꽃문학관의 소속 시인으로 활동하고 계신다.


충남 공주시 봉황로 85-12

041-881-2708

하절기 10:00 - 17:00, 동절기 10:00 - 16:00

/ 매주 월요일 휴무

주민 이야기

공주 주민들의 대다수가 취미를 하나씩 갖고 있는데 특히 취미로 시를 짓는다는 게 흥미로운 점이다. 매년 10월이면 ‘풀꽃 문학제’가 열리는데 전국에서 꽤 많은 인파가 모여 시 낭송대회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종종 문학관에 나태주 선생님께서 계시기도 한다. 한번은 방문자들을 위해 문학관 안에 있는 풍금을 쳐주시기도 하셨다고.


공주 하숙마을

공주는 개화기 때부터 선교계 학교들이 세워짐으로써 근대교육의 시작이 빨랐고, 초, 중등 교원 양성기관이 일찍 설립되어 수많은 교육자를 배출하는 등 ‘교육의 도시’라는 명성을 얻게 되었다. 이에 자연스럽게 외지 학생들이 공주로 몰려들었고, 1970년대 제민천 일대에는 타지 학생들이 묵는 하숙 문화가 발달된 것이다. 이후 학교에서 기숙사를 만들기 시작하면서 하숙 문화는 서서히 사라져갔다.

당시 공주의 하숙 문화의 추억과 향수를 기억하기 위해 2014년부터 민간 주도 하에 ‘제민천을 따라 흐르는 문화골목 만들기’ 사업과 도시재생을 위한 ‘하숙촌 골목길 조성 사업’을 연계하여 조성되었다. 현재는 게스트하우스로 운영되고 있으며 공식 홈페이지에서 예약할 수 있다.

About Town Stay
지역의 고유한 정체성을 지닌 건물에서 하루를 지내고, 이름난 맛집보다는 주민들이 즐겨 찾는 동네 식당과 가게를 찾는 여행이다. 지역 예술가, 작가, 교류할 수 있는 공방과 갤러리, 동네책방에서 지역 주민과 교류하고 커뮤니티의 일원이 된다. 친구가 된다. 마을을 관광지로서 소비하기보다는 주민 생활공간에 머물면서 지역과 교류하고 마을의 일상을 여행하는 총체적인 경험을 마을스테이라 부른다.

Location

마을스테이 컨시어지 / 공주시 감영길 3
봉황재 한옥 / 공주시 큰샘3길 8
업스테어스 코워킹스페이스 / 공주시 감영길 9, 2층


Reservation

Tel 041-960-5525